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세계 대전/배경 (문단 편집) === 오스만 제국의 후퇴와 러•오의 신성동맹 === 슬라브계 국가인 러시아와 불가리아, 세르비아, 여기에 더해 [[몬테네그로 왕국|몬테네그로 공국]]들의 친분이 시작 된 건 이들에 대항했던 오스만 제국의 약 200년에 걸친 수축(쇠퇴 및 붕괴) 때문이었다. 러시아는 [[17세기]] 중반 [[폴란드-리투아니아]]를 물리치기 시작한 대륙의 신흥 강자였다. 신흥 강자가 된 러시아는 [[크림 칸국]] 등의 방향으로 남하를 시도했고, 이 과정에서 폴란드에게 우세를 거두고 [[제2차 빈 공방전]](1683)을 통해 다시 옛날의 세력을 떨치려 하는 오스만과 충돌하게 된다. 200년 이상에 걸친 긴 영토분쟁의 시작이었다. [[18세기]] 내내 [[러시아-튀르크 전쟁|오스만과 러시아는 일진일퇴했다]]. 오스만이 결국 2차 빈 공방전에서 참패한 이후 [[신성 로마 제국]]과 오스만 제국은 긴 전쟁에 들어가게 되고, 러시아 역시 1686년의 [[러시아-튀르크 전쟁|대 튀르크 전쟁 이래]] 기독교 [[신성동맹]]에 가담해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지속적으로 차지하고 있었다. 오스만을 두들겨 패며 팽창한 건 신성 로마 제국과 후신인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 역시 마찬가지였다. 대 튀르크 전쟁으로 [[합스부르크]] 왕가는 오스만에 [[카를로비츠 조약]](1699)를 강요하여 [[헝가리]](오늘날의 [[슬로바키아]] 포함)[* 합스부르크는 헝가리의 야노시 왕가를 혼인 동맹으로 흡수한 뒤로 헝가리-보헤미아의 왕을 겸하고 있었다. 헝가리의 일부였던 [[슬로바키아]](상헝가리, 상마자르 Upper Hungary) 공국은 일종의 완충지대였는데, 합스부르크 군주국령이었다가 2차 빈 공방전 당시 빼앗긴 상태였다. 이걸 1699년 회복한 것. 이 당시 헝가리는 프레스부르크(오늘날의 [[브라티슬라바]])를 수도로 하는 합스부르크 휘하의 헝가리 왕국과 구 수도 [[부다]](오늘날의 [[부다페스트]])를 포함한 오스만 제국령 헝가리, 그리고 왈라키아, 몰다비아, 트란실바니아 공국 등의 오스만 제국의 속국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.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791px-Central_europe_1683.png]] 1526년 러요시 2세의 전사로 오스만에게 반독립국으로 망했었던 구 헝가리-[[보헤미아]](오늘날의 [[체코]]) 왕국 지역은 이로써 다시 단일 지배자 아래에 놓이게 된다.], [[트란실바니아]], 슬라보니아(현재의 [[슬로베니아]]와 크로아티아 북동부)를 얻어냈다. [* [[베네치아 공화국]]은 [[크레타]]를 잃은 대신 [[달마티아]] 등을 얻어냈다.] 결국 이때 오스만에게서 이긴 것이 [[오스트리아 제국]]([[나폴레옹 보나파르트|나폴레옹]] 패전 후), 여하간 이 당시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이해는 오스만을 때린다는 이해에 매우 충실했다. 신성 로마 제국과 러시아의 동맹 관계는 [[7년 전쟁]]과 [[나폴레옹 전쟁]]에서 보듯 비교적 끈끈한 편이었으며, [[신성동맹]] 역시 여러 차례 조직되었다. 한 예로, 7년 전쟁이 그치자 신성 로마 제국과 러시아 제국, 더해서 [[프로이센 왕국]]은 [[폴란드]]를 갈라먹는 데 의견이 일치했고 결국 [[폴란드 분할|폴란드는 3분]] 되고 만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